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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포먼스피지오의 사람과 움직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




퍼폼팀[피플][채용] 조현정 캡틴의 이야기 (Since 1999)

퍼포먼스피지오 트레이닝 센터


'캡틴' 의 이야기 Since 1999

(이 글은 퍼포먼스피지오 트레이닝 센터 팀에 합류할 예비 피지오트레이너분들과 물리치료사로서 살아온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누고,
퍼포먼스피지오와 나래연구소의 비전이 조금이나마 전달 됐으면 하는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물리치료과에 왜 갔어요?' 라고 물으면, ‘물리치료사가 하고 싶었어요’ 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더라고요. 저는 물리치료학과에 가고 싶어서 간 것은 아니에요. 저는 딱히 무엇이 되고 싶다. 무엇을 하고 싶다 하는 것이 없었어요. 사실 운동을 잘해서 운동선수가 되고 싶었는데, 여러 정황상 수행하지 못했고, 육군사관학교 시험도 떨어졌죠. 수능을 보고 나니 막상 가고 싶은 학과도 하고 싶은 공부도 없었어요. 어릴 때부터 운동을 이것저것 많이 하다 보니, 허리가 매우 아팠고 그 당시 다녔던 병원 물리치료실 선생님 옆에서 졸졸 따라다니면서 놀던 것이 지금의 인연이 됐어요. ‘너랑 물리치료과 잘 맞을 것 같으니까 한 번 가봐. 좋은 직업이야.’ 이 얘기가 마음에 와닿았어요.


 물리치료사라는 직업을 갖기 시작한 해가 2002년이에요. 한·일 월드컵 열기로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일 때, '하고 싶은 일을 하자'라는 마음으로 '하늘스포의학클리닉' (지금의 '하늘병원')에 인턴으로 들어갔죠. 거의 대부분의 졸업 동기들은 이미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일을 시작할 때, 저는 업무를 찾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일을 할까’ 고민하던 시절이었어요. 미국에서 태권도 사범 자리로 요청도 왔었고, 대학병원 면접도 봤었어요. 가장 잘하는 것이 무엇이고,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끝에 ‘스포츠’라는 것을 깨닫고, 기왕에 배운 공부, 전문가로서 성장해보자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 좋은 기회에 병원에 들어가게 됐죠.


 병원에서 근무하는 것이었지만, 사실 업무는 선수들 트레이닝이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병원의 재활& 트레이닝 센터의 시설 및 규모는 굉장한 파격이었어요. 그때 배웠던 여러 가지 접근 방법과 고민들, 창발 들이 어쩌면 지금 저의 바탕이 되는 일부분이 아닐까 생각해요. 물리치료사의 역할로 치료적 접근뿐만 아니라 트레이닝과 운동 처방에 대한 접근도 많이 배운 시간이었어요. 그때는 오픈 병원이고, 새로운 접근 방식의 재활 센터이었기 때문에 다양한 업무를 해야 했어요. 팀에서 막내 역할이었을 때는 컵 닦기, 청소하기 등등 일을 했었죠. 그게 나쁘지는 않았어요. 그때는 배우고 뭐든지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요. 많은 것을 배우면서 지식을 채워 나가야 했던 시기이었어요. 다양한 운동 기구들을 다루는 것부터, 선수들한테 직접 몸으로 보여주기도 해야 했고, 이론적으로 설명도 해야 했어요. 왜냐하면 다양한 종목의 선수뿐만 아니라 굉장히 다양한 연령층과 전문가들, 다양한 직업과 배경을 가진 분들이 많이 방문하셨거든요. 또 잘 모르는 스포츠 종목은 직접 트레이닝 받는 선수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서로 상의도 하면서 서로에게 도움이 됐었죠. 


 병원 원장님께서 진료 보시면서 하시는 업무도 많이 배웠어요. 원장님 진료실에 쫓아가서 보기도 하고, 질문도 하고.. 모르는 것이 있을 때마다 질문을 했죠. 물론 당연히 혼자 찾아서 공부도 했고요. 그런데, 임상에서 경험이 쌓일수록, 학교에서 공부했던 것, 그리고 책 또는 논문에서 다루었던 내용과는 다른 상황들이 너무 많은 거에요. 케이스마다 다르고, 종목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천차만별 이었어요. 못 믿겠지만, 해결할 수 없고, 고민에 빠질 땐 술도 많이 마시고, 울기도 하고 그랬죠.


 월급에 대해 고민을 안 한 것은 아니었어요. 사실 그때 월급이 다른 동기들과 비교했을 때 적었거든요. 그에 비해 업무량은 어마어마하게 많았고, 공부해야 하는 양도 엄청났어요. 그런데, 그때 병원 '사수' 께서, '‘지금 한 푼 돈에 따라가지 말고, 너 인생이 마라톤이라 생각하고 정진해. 지금 고생이 몇 년 뒤 다른 친구들보다 너를 더 높게 사게 되는 경험이 될 것이다' 말씀하셨죠. 그땐 안 믿었어요. 그냥 지금 여기서 포기하면 안 된다 생각했고, 기왕 시작한 것 '사수' 보다 올라가자 ‘청출어람’ 이 되어 보자는 생각에 인턴부터 시작해서 재활 센터 실장까지 7년 버텼어요. 이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것, 배울 수 있는 것 다 배워보자 생각하고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고 그랬어요. 어쩌면 그때 물리치료사는 '물리치료' 만 해서는 안 된다.. 여러 가지를 다양하게 수행할 수 있는 '퍼포먼서' 가 되어야 한다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대학원도 운동생리학 전공을 택했죠. 물리치료과에서는 배우지 않는 지식과 경험을 쌓기 위해서요.



  그렇게 7년 근무 후에, 30대가 되기 전에 새로운 도전과 경험을 하지 않으면, 이 직업에 싫증을 느낄 수 있겠다.. 여기에 갇히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을 무렵, 좋은 제안(캐나다에서의 피겨 국가대표 김연아 선수의 트레이닝 제안) 을 받았죠. 그래서 그 동안의 병원 업무, 병원에 대한 집착, 나의 경력에 대한 집착을 다 내려놓고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떠났어요. 그때 주변의 많은 분은 말렸어요. 지금까지 네가 해 온 일들은 사라질 것이다. 편하게 지낼 수 있는데, 왜 굳이 고생하느냐, 돈을 많이 못 버는데 괜찮나 등등. 그런데 저는 새로운 경험이 필요했어요. 새로운 도전을 하나씩 성취하면서 저의 한계를 느끼고, 또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어요. 그렇게 외국에서 생활하다 보니, 시야가 넓어지면서 내가 병원에 있는 것만이 우물 안이 아니구나.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쌓지 않는 것도 우물 안 개구리구나 느꼈어요. 그래서 먼저 외국어를 공부해서 레벨을 올려보자 마음먹었고, 지금까지도 영어 그리고 다른 외국어는 도전 중이죠. 오해하시는분도 계시더라구요. 제가 돈이 많아서 외국에 간 것이 아니라, 좋은 기회가 닿았고, 사실 번 돈 다 싹 긁어모아서 갔었어요.. 돌아오고 나선 ‘빈털터리’


  캐나다, 미국 그리고 러시아에서의 생활은 많은 것을 남겼어요. 내가 한 없이 작고 부족한 존재라는 것 (지금도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고, 배울수록 나는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 등.. 특히 많은 기억이 남는 캐나다와 미국 생활은 제게 선물을 남겨주었죠. 물리 치료 분야의 거장들도 만나게 되었고, 많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우정을 쌓으면서 여러 분야에 관심도 커졌죠. 미국 물리치료사의 사회적 위치와 존재가치에 대한 이유도 알게 되었어요. 사실 캐나다에서 선수의 개인 트레이닝 시절을 끝내고 미국에 갈 때는 그저 영어를 잘해보자,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무언가의 원망과 허무한 감정 때문에 새로운 곳에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막상 미국에 가서 보니, 내가 해야 하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내가 간절히 원하는 일이 ‘물리치료사’ 임을 깨닫게 됐죠. 마치 ‘물리치료’가 내게 큰 ‘선물’ 인 것처럼.. 마치 나는 '물리치료'를 위해 태어난 것처럼. 그렇게 미국 물리치료사에 도전했었어요. 사실 쉽지 않았죠. 나이도 있었고, 한국에서의 생활과 경제적인 부분 등. 그렇게 고민을 되풀이하던 시간 동안에 좋은 제의로 한국에서 크게 날개를 펼쳐보자 생각한 거에요. ‘용의 꼬리가 될지 언정 뱀의 머리가 되겠다’ 생각했죠. 그래서 열심히 달렸어요.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선. 후배 막론하고 찾아가서 배우고 견문을 넓혔어요.



 (위 / 조현정 대표 인터뷰 영상)



  아직도 저는 배우고 있다고 생각해요. 인생의 '재미', 인생의 '찰짐'을 배움과 도전에서 느낀다고 해야 할까요. 잘하는 것을 꾸준히 지키면서 잘 모르는 부분을 알고 싶은 거예요. 너무 호기심도 많고 세상은 제게 너무 자극적인 것이 많기 때문이죠. 그저 다른 누군가 결론 지어버린 것을 수긍하는 것보다 자꾸 ‘왜’라는 궁금증을 갖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직접 부딪혀도 보고, 여러 경로를 통해서 알아보기도 하고, 잠을 줄여가며 찾기도 하고…이 세상은 아직 탐구하고 싶은 흥미진진한 놀이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나래연구소는 갑자기 만들게 된 것이에요.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을 때, 무언가 작은 뚜껑에 덮여 있는 느낌 같아서 급하게 제가 맘껏 하고 싶은 것 하자라는 마음에 만들었죠. 재활과 운동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보자는 취지 이었지만, 지금은 '물리치료의 날개' '물리치료사의 날개'라는 멋진 브랜드가 되었죠. 돈은 안 중요해요 라고 말하진 못해요. 돈이 있어야 저도 살고 공부도 하죠. 다만 돈이 제 인생의 제일 우선순위는 아니기 때문에, 나래연구소를 통해서 좋은 세미나, 좋은 연구, 좋은 환경을 대한민국 물리치료사들에게 제공하고 싶어요. 저는 이끌어 주는 누군가 없었거든요. 사막에 혼자 버려서 길을 찾아 헤맸다고 해야 할까. 그런 시간 들을 겪다 보니, 안내자의 역할이 되면 어떨까 생각했나 봐요. 그래서 어두운 길도 밝혀주는 길이 되고, 험난한 길에 포장길을 깔아주기도 하는.. 개척자가 되는 거죠.


  퍼포먼스피지오 트레이닝 센터는 사실 절 위해 만든 것은 아니에요. 안내하고 개척을 하다 보니 따라오려는 좋은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이 맘껏 능력을 펼칠 플레이그라운드가 없었어요. 아이들이 신나게 놀게 하려면 마당이 있어야 하잖아요. 마당을 만든 거예요. 맘껏 그들이 능력을 펼칠 수 있고, 그 능력을 더 잘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이런 일들이 쉽진 않아요. 혼자 다 한 것도 아니에요. 주변에 응원하고 함께 하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죠. 피가 섞였다고 가족인가요..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이 도전하고 응원하고 화이팅 하는 팀원이 있기 때문이죠. 물리치료 연차, 경력 그런 것에 제한을 두진 않아요. 쌍방으로 향하고 있어야 소통이 되잖아요. 서로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가면서 책임 하게 자유롭게 우리를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해 노력하는 플레이어가 되어서 재미난 인생 게임을 만들어 가고 있으니, 함께 그 게임을 할 플레이어가 필요해요. 하나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숨겨진 잠재력을 적재적소에 펼쳐낼 수 있는 인재가 될 사람이 필요해요. 함께 이 험난한 길을 걸어갈 때 물도 나누어 마시고 콩 한 조각도 나누어 줄 수 있는 당신! 당신의 능력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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